By Tracy Shim
어떤 대상을 부르는 언어가 세밀해진다는 것은 그 대상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 달라졌다는 신호이다. 언어에는 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우선순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례로 영어의 ‘Rice’를 들 수 있다. 벼, 쌀, 밥을 하나의 단어로 아우르는 영어권과 달리, 한국어에서 밥은 그 상태와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게 나뉜다. 오랫동안 우리 식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기에, 상황에 맞춰 구체적으로 구분해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논리를 최근 한국의 베이커리 시장에 대입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읽힌다. 과거 우리에게 슈톨렌, 파블로바, 플랑, 테린느 같은 명칭들은 생소한 외래어이거나 그저 ‘서양식 빵’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에 묶인 간식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이들을 단순히 빵이라 뭉뚱그려 부르는 것은 마치 모든 커피를 그저 ‘검은 물’이라고 부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접한 서울 주요 상권의 디저트 가격은 웬만한 식사 한 끼 값을 훌쩍 뛰어넘는다. 조각 케이크 하나가 2만 원에 육박함에도 Z세대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풍경은, 이제 빵이 ‘식품’이 아닌 ‘패션’의 영역에 진입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에게 디저트는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감각을 증명하는 아이덴티티의 표현 수단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우는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개인의 미적 기준을 보여주는 ‘디지털 명함’ 역할을 하며, 어떤 브랜드의 디저트를 향유하는지가 그 사람의 트렌드 민감도를 대변하는 지표가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단순한 물건을 사는 것보다 ‘경험을 얻는 것’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에 올릴 단 한 컷의 완벽한 사진을 위해 전국의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빵지순례’가 일종의 성지순례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이색적인 공간을 방문하고 독특한 디저트를 맛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좋은 대화 소재가 될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하는 도구가 된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비주얼’이다. 자신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남기는 성향 때문에, 같은 종류라도 색상과 모양이 얼마나 새롭고 예쁜지가 관심도를 결정한다. 대전 성심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튀김소보로’로 유명했던 성심당이 전국구로 더 크게 주목받은 계기는 ‘딸기 시루’ 케이크였다. 화려한 과일이 쏟아질 듯 쌓인 압도적인 비주얼이 SNS상에서 강력한 경험 콘텐츠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성심당의 ‘딸기 시루’ 케이크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5시간 이상 추운 거리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구매에 성공한 것 자체도 잊지 못할 경험 소비의 대상이 된다. 또한 성심당은 홍보에 큰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기부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인 바이럴을 창출해 내고 있다.
나아가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맛만 평가하지 않는다. 디저트의 모양은 물론, 매장의 인테리어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스태프들이 전달하는 분위기까지 하나의 완성된 패키지로 경험한다. 기존 베이커리의 문법을 파괴하고 실험적인 조형물과 무채색의 공간, 마치 갤러리의 큐레이터처럼 보이는 스태프들의 절제된 움직임으로 브랜드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시각화한‘누데이크(NUDAKE)’가 대표적이다. 사진 속에서 제품과 공간, 사람이 어색함 없이 어우러질 때 소비자의 만족도는 가장 높아지며, 이는 곧 자발적인 공유와 강력한 팬덤으로 이어진다.

결국 디저트를 즐기는 행위는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자 가장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과정이다.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를 선택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다. 동시대의 미감을 공유하고 자신의 세계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채워 나가는 투자에 가깝다. 이제 디저트는 식사 뒤에 따라오는 소소한 덤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강력한 패션 아이템이자,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는 가장 구체적인 언어이다.
Key Takeaways
- 취향의 언어가 곧 문화적 자본이 되는 시대: ‘빵’이라는 범용적 단어 대신 슈톨렌, 테린느, 플랑 같은 고유명사를 정확히 구사하는 현상은 디저트가 단순한 음식을 넘어 개인의 취향과 지식 수준을 증명하는 고도화된 ‘문화적 자본’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 푸드(Food)를 넘어 패션과 콘텐츠로의 전이: Z세대에게 디저트는 허기를 채우는 열량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는 ‘패션’이자 SNS 피드를 풍성하게 만드는 ‘경험 콘텐츠’이다. 밥값보다 비싼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은 미각적 충족을 넘어,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기표현의 재료’를 구매하는 행위이다.
- 일관된 미감이 만드는 브랜드 팬덤: 성심당의 시루 케이크나 누데이크(NUDAKE) 사례처럼, 압도적인 비주얼과 공간의 철학, 스태프의 페르소나가 하나의 지향점을 향할 때 소비자들은 강력한 매력을 느낀다. 이제 디저트 비즈니스의 핵심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소비자가 기꺼이 찾아가 기록하고 싶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감각의 경험’을 설계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