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racy Shim
전통의 보존에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한국적인 것’이 문화 자산이 되기까지
한때는 ‘한국적인 것’이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진 감각으로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의 상품은 관광객이 사는 기념품에 가까웠고, 한글이 적힌 티셔츠보다는 뜻도 모르는 외국어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가 더 힙하다고 인식되던 때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글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한 의류, 자개나 전통 매듭을 활용한 귀걸이와 같은 액세서리가 젊은 층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식문화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컵케이크와 마카롱 같은 서양식 디저트가 중심이던 자리를 약과, 한과, 전통차가 서서히 대체하기 시작했다.

젊은 디저트 가게 운영자들은 한국의 디저트를 단순한 ‘전통 음식’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에 맞는 비주얼과 분위기로 재구성했다. 고즈넉한 맛과 절제된 미감을 앞세운 이 디저트들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서 ‘할매입맛’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할매입맛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의 입맛’을 의미하기보다는, 과하게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선호하는 취향을 가리킨다. 이 표현에는 전통적인 취향을 좋아해도 촌스럽지 않다는, 일종의 문화적 완충 장치로서의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적인 미감이 젊은 층 사이에 확산되는 데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도 컸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진행된 ‘사유의 방’ 전시는 국보 반가사유상 단 두 점 만을 전시하고, 낮은 조도와 긴 체류를 유도하는 동선을 통해 ‘보는 전시’가 아니라 ‘머무는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정보 과잉에 익숙한 세대에게 설명 없는 여백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고, 명상·웰니스·슬로우 라이프와 같은 Z세대의 정서 코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 결과 국립중앙박물관은 ‘옛것을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방문하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25년 기준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관람객 수는 약 650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시 무료 관람으로 인해 관람객의 연령대별 정량 데이터는 제한적이지만, 다양한 평가를 통해 젊은 세대 방문이 증가하고 있다는 질적 분석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이 변화는 전시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립중앙방물관의 굿즈 전략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차가운 소주를 따르면 선비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 변온 소주잔, 한국 전통 주방 구조인 부뚜막을 모티프로 한 인센스 세트 등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오픈런’을 만들어냈다. 또한 KBO와 협업해 출시한 야구국가대표팀의 전통 문양 유니폼 역시 ‘없어서 못 사는’ 상품이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이 언제부터 촌스럽지 않고, 젊은 층도 즐길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감각이 되었을까. 그 분기점은 BTS의 월드 투어와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있었던 2019년 전후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부터 한국적인 요소는 단순한 문화적 배경을 넘어, 잠재적인 전략적 문화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직 대중적으로 ‘힙하다’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적어도 젊은 층이 거리낌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K-pop과 K-drama의 글로벌 성공이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성공이 단순히 “외국에서 인기가 있다”는 소식으로 소비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와 미감이 더 이상 글로벌 기준에 맞춰 변형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제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2022년을 기점으로 Z세대의 태도는 또 한 번의 전환을 맞이한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감각이 보편화 되면서, “해외 브랜드처럼 보여야 멋있다”거나 “외국 감각을 따라야 세련돼 보인다”는 압박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이 시점부터 힙함은 단순한 해외 레퍼런스가 아니라, 새로움·정체성·맥락 있는 이야기의 결합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적인 요소는 더 이상 극복해야 할 한계가 아니라,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되었고, 젊은 층은 이를 숨기기보다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디저트, 굿즈, 전시, 패션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며 한국의 전통문화가 한국 젊은 세대는 물론 글로벌 맥락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는 인식을 점차 굳혀 나갔다. 그 연장선에서 2025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성공은 이러한 흐름에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문화를 바라보는 사고방식 역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전통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시대의 언어로 계속 번역되고 사용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전통을 재해석하는 행위가 왜곡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전통문화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전통은 더 이상 고정된 형태로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일상과 감각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될 때 비로소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 자산이 되고 있다.
Key Takeaways
- 전통은 설명할 대상이 아니라, 쓰이도록 설계해야 한다.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거나 설명하려는 순간, 전통은 다시 무거워진다. 요즘 소비자에게 전통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택될 수 있는 디자인 자원이다. - ‘존중’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성’이다
전통을 존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지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키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전통을 배우기보다, 쓰고 싶어 한다. - 글로벌을 닮으려는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2022년 이후, 과도하게 글로벌한 미감은 오히려 익명적으로 인식될 위험이 커졌다. 차별화는 이제 ‘얼마나 글로벌한가’보다 ‘어디에서 왔는가를 어떻게 드러내는가’에서 만들어진다. - 전통을 쓰되, 번역자는 젊은 세대여야 한다
전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어가는 방식은, 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는 세대에게 해석의 권한을 넘기는 것이다. 통제보다 실험이, 보존보다 사용이 전통의 생명력을 연장한다. - 전통은 캠페인이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
한 번의 콜라보나 이벤트로 끝나는 전통 활용은 쉽게 소모된다. 전통적 요소가 제품, 공간,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지속적으로 녹아들 때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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